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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하면 할수록 투표율이 떨어지는 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4일 미국 대선에서는 오바마 열풍으로 투표율이 크게 올라갈 것 같다. 지난해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에서 시장 선거에 출마한 미국인 친구를 도와주면서 미국 선거를 살짝 맛본 경험이 있다. 그동안 한국인에게 낯설던 노스캐롤라이나가 이번에 제법 유명해 졌다. 오하이오, 플로리다 등과 함께 ‘스윙 스테이트’(접전주)로 분류되면서 외신에 자주 언급된 덕분이다. 미국에서 선거를 지켜보면서 우리나라에도 도입했으면 하는 게 있었다. 바로 ‘I voted’ 스티커다. 투표 당일 유권자가 투표소에 가서 기표를 하고 나오면 선관위 직원들이 왼쪽 가슴에 달아준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 이마에 앙증맞게 붙여 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시민이 이 스티커를 떼지않고 달고 다닌다. 스티커를 보면 단박에 저 사람이 투표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스티커를 붙인 유권자는 걸어다니는 선거 캠페인 광고판이나 다름없다. 특히 투표일이 법정 휴일로 지정되지 않는 보궐선거에서는 이런 스티커가 투표율 제고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4일 치러진 미국 대선은 대통령만을 뽑는 선거가 아니다. 임기 2년의 하원 435석과 상원(100석) 3분의 1인 35석을 새로 선출한다. 또 주별 상·하원 의원이나 주 판사, 지역판사, 카운티 커미셔너 등 수많은 공직을 뽑는다. 투표용지가 거의 8절지 시험지처럼 크다. 미국 선거를 전하는 우리나라 방송을 보면 투표 열기가 꽤나 뜨겁다. 하지만 미국에서 봤던 투표 당일 모습은 매우 차분했다. 우리 선거철이면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나붙는 후보자 벽보라든지 플래카드는 미국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시내 주요 도로변에 세워진 작은 후보 캠페인 푯말이 고작이다. 전지 반장 크기의 푯말에는 후보자 이름과 후보가 출마한 직책 정도가 적혀 있을 뿐이다. 지난해 채플힐 시장에 출마한 미국인 친구도 이번에 노스캐롤라이나주 오렌지카운티 커미셔너에 공화당 후보로 나섰다. 미국에 있었더라면 이번에도 투표소 앞에 나가-우리나라와 달리 선거 당일에도 투표소 앞 일정한 거리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면서 한 표를 부탁할 수 있다-그 친구 선거운동을 도와주고 있었을 게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벌써 결과가 뻔한건가. 오바마 당선이 거의 확실하긴 하지만, 너무 단정적으로 보는 건 위험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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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고 있는 ‘연쇄하는 대폭락’(소에지마 다카히코 지음, 박선영 옮김)에서 일본 도코하가쿠엔대학 소에지마 교수가 보는 미국 증시 전망이다. 국내 경제 상황에 대해 “6, 7월에는 레이더에 폭격기가 보이기 시작했다면 11월 초입 전인 지금은 공습경보 발령 했다고 보면 된다. 9월 괴담 어쩌고 하는 애들이 본 건 스텔스 폭격기였다”면서 “97년에는 팔에 깁스를 했지만 기초체력은 있었는데, 지금은 다리뼈부터 망치로 박살을 내면서 다리에 깁스하고 휠체어 없으니까 목발 가지고 뛰는 꼴”이라고 말하는 다음아고라의 논객 ‘미네르바’의 진단 만큼이나 암울하기만 하다.
멜라메드가 누구인가. 30여년간 CME를 이끌면서 양파와 달걀, 냉동돈육 등 농축산물 선물이나 거래하던 CME를 세계 주가지수선물과 통화선물의 메카로 탈바꿈시킨 '금융선물시장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금융위기의 주범이 서브프라임모기지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서프프라임모기지가 무엇인가. 프라임모기지나 알트-A, 점보론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 주택자금을 제공하는 비우량주택담보대출을 말한다. 주택가격 상승기에 서브프라임모기지론이 문제 되지 않았다. 서브프라임모기지론으로 집을 구입한 신용도 낮은 미국인들은 오른 주택가격만큼의 미실현 차익을 담보로 역모기지론을 받아서 생활비를 쓰고 차를 사고 흥청망청 써댔다. 주택 경기가 꺾이더라도 서브프라임모기지 그 자체가 전 세계 경제를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뜨릴 수 있는 건 아니다. 2006년말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모기지업체들의 사망으로 끝날 일이었다. 주택담보대출을 한 모기지업체들은 이 주택담보대출채권을 자산유동회회사(SPC)에 넘겨 현금화를 하고, 다시 SPC들은 이런 채권들을 여러개 묶어 주택담보대출증권(MBS)이라는 걸 만들어 내 리먼브러더스 같은 투자은행(IB)들에 팔고, 투자회사들은 다시 부채담보부증권(CDO)라는 걸 만들어 전 세계 중앙은행과 투자자, 보험회사, 헤지펀드 등에 팔았으니 모기지업체의 부실은 도미노식으로 파급효과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가지치기는 여기서 그치질 않는다. 선물거래라는 것과 결합하면서 더욱 복잡해 진다. 선물거래란 무엇인가. 선물거래는 현물거래와 상대되는 개념이다. 주식거래는 기업의 주권을 거래하는 것인만큼 현물거래이다. 물론 증권시장에서 주권이 물리적으로 건네지는 건 아니고 증권예탁결제원이 맡아놓고 있는 주권의 소유권을 넘기는 것 뿐이지만 주권이 실재한다는 점에서 현물이다. 선물거래는 미래에 있을 현물의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파하기 위해(헤지) 만들어낸 거래기법이다.이런 식이다. 소를 기르는 축산업자와 육류가공업자가 있다고 치자. 축산업자나 육류가공업자는 항상 미래의 소값에 불안하기만 하다. 소값이 급등하면 축산업자가 큰 돈을 벌겠지만 폭락하면 육류가공업자가 더 많은 돈을 벌게 된다. 그래서 축산업자와 육류가공업자는 미리 6개월 뒤 또는 1년 뒤의 소값을 적정하게 합의해 미리 거래해 두면 폭등이나 폭락에 따른 위험을 덜 받게 된다. 선물기법은 이제 농축산물 뿐만 아니라 원유, 금, 원자재는 물론이고 주가지수, 통화, 환율, 탄소배출권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과거 선물시장에서는 대체로 담보금의 3배 정도까지 거래할 수 있던 것이 지금은 10배, 100배까지 가능하다. 1억이 있다면 100억원 어치의 선물거래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바로 미적분을 활용할 정도로 복잡한 파생상품을 만들어낸 미국식 금융공학의 실체이다. 지금의 복잡한 금융선물시장을 일군 아버지 리오 멜라메드에게 소에지마 교수는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인 멜라메드는 32년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홀로코스트의 광풍 속에서 그의 가족은 39년 리투아니아 주재 일본 총영사가 일본을 경유할 수 있는 트랜짓 비자를 발급해 주면서 구사일생의 기회를 가졌다. 시베리아를 거쳐 일본에 도착한 멜라메드 가족은 도쿄에서 생활하다가 유대인 난민위원회 도움을 받아 41년 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에 정착했다. 멜라메드가 선물거래에 우연찮게 눈뜨게 된 건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운명의 손'에 이끌려서이다. 그는 로스쿨에 다녔는데 법률서기 일을 알아보다가 찾은 게 CME 심부름꾼 일이었다. 마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일해 줄 심부름꾼을 찾고 있었는데 그의 수업 스케줄이 꼭 맞았던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해서 CME의 농축산물 선물시장을 배워 나갔다. 변호사로 일하던 그는 67년 CME 의장에 취임하면서 마치 오랜 기간 준비했다는 듯 거침없이 내달렸다. 72년 달러화와 엔화, 파운드화 등 외환을 기초상품으로 하는 통화선물시장을 세계 최초로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CBOT 이자율선물(1975), 유로달러선물(1981), S&P 500 지수선물(1982), CME 글로벡스(1992), E-미니 S&P 500(1997) 등 다양한 선물 상품이 그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자신의 금융아이디어는 어릴 때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말한 적 있다. 홀로코스트를 피해 일본으로 건너와 도쿄에 머물던 41년 4월 그는 당시 수학교사이던 아버지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서 유대인 사회가 자기네 가족처럼 3000여명의 유대인이 갑작스럽게 몰려들었는데도 지원을 해 줄만큼 돈을 충분히 갖고 있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복잡성을 이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고시하는 공식 환율을 믿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줬다. 당시 유대인들이 외국으로 나가려면 유대인 난민위원회를 위해 5000엔을 은행에 예치해야 했다. 이들은 나중에 공식 환율로 50달러를 받는데 난민위원회는 5000엔을 갖고 암시장에서 거래해 이익을 남겨 새로 유입되는 난민을 돕는 자금으로 활용했다. 1987년부터 2006년까지 20년간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 재임하면서 '경제대통령'으로 불린 앨런 그린스펀도 지난 23일 자신의 잘못을 부분적으로 인정했다. 이제 그가 세계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할 차례인 것 같다.지금의 세계 금융위기를 불러온 책임에 대해. 그 스스로가 자서전 '영원한 트레이더 리오 멜라메드'에서 "훌륭한 트레이더는 자신이 틀렸을 때 오류를 인정해야 한다. 나는 내 아집을 버려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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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귀국한지 세달이 지나면서 이제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왔다. 정신없이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느낌의 생활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살림살이도 정리됐고 직장생할도, 아이들 학교생활도 궤도에 들어섰다. 자신감의 큰애는 2학기 복학하자마자 반회장 선거에 나가 뜻하는 바를 이루었고, 둘째도 좋은 선생님을 만나 학교생활을 재밌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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